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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기여도 384 7.5%] 2010-04-29 21:57:03 | 조회 : 1714
제      목  聾巖(농암) 李賢輔(이현보) 宗宅(종택)과 사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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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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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택 정문]

 

농암 이현보(李賢輔 : 1467∼1555)

 

자(字)는 비중, 호(號)는 농암,
본관은 영천(永川)으로,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20세 때 홍귀달(洪貴達)선생께 수학하고, 32세에 문과에 급제.
36세에 사관으로 사초(史草)를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직언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얻었고,
38세때는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였다가 안동으로 유배되었다.


연산군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기적적으로 죽음을 모면하니,
친구들이 선생의 이런 강직함을 보고 '소주도병(燒酒陶병)' 이라 했다.
사관(史官)으로서 유일하게 사지(死地)를 벗어난 경우이다.

 

중종반정으로 복직되어 형조참판, 호조참판, 지중 추부사 등을 역임했으나,
그때마다 외직으로 자청하여 영천, 안동, 경주, 대구, 경상도관찰사등의

8개 고을살이를 했다.


경직(京職)을 절대적으로 선호한 당시의 정치풍토로 볼 때,
외직의 자청은 남다른 효심(孝心)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생에 보다 가깝게

가고자 하는 일관된 신념이었다.
동료들의 신망과 존경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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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幀(영정) 보물 872호]

 

농암영정은 1537년 경상감사 집무모습을 대구 동화사 승려 옥준이 그렸다.


농암종택에는 이 영정 외에 1872년 추사 김정희가 추천한

소당 이재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63호)이그린 별본 영정이 있고,
그 제작 과정이 적힌 [영정개모일기] 보물 1202호가 있다.

 

선생의 모습에 대해 연산군은 "검열은 얼굴이 검붉고 볼에 털이 난 자였다"고 했고,
사관은 "강직하고 공명정대한 공무수행에 모두들 '소주도병'이라 했으니,
이는 외모는 검으나 심성이 냉엄하다는 뜻"이라 했다.
1997년 삼성갤러리의 '몽유도원도와 조선전기국보전'에 전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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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사 시절 '화산양로연(花山養老宴)'에는 80세 이상의 남녀귀천을 한자리에

함께 초정하는 파격적인 면모를 보이는데, 이런 측면은 집안에서도

"자제와 비복들을 편애하지 않았고 혼인도 문벌 집안을 찾지 않았으며,
사람을 대함에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았다"는 퇴계선생의 행장(行狀)기록과 일치한다.

 

선생은 휴머니즘이 가득한 목민관으로, 대시인(大詩人)이며 대효자(大孝子)였다.
화산양로연은 고향에서 마련한 '애일당구로회(愛日堂九老會)'로 이어졌고,
여기서도 선생은 70세 노구의 몸으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어

90세 부모와 노인들을 즐겁게 했다.


이런 경로모습에 동료친구들이 일제히 축하시를 보냈고,

지금 그 친필시 40편이 그대로 종택에 보존되어 있으니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보물 1202호)이 바로 그 책이다.
'애일구로회'는 이후 400여년을 이어오는 농암가문의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선생은 국왕과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표연히 귀거래했다.
선생을 위한 전별연(餞別宴)은 조선조 유일의 정계 은퇴식으로,
국왕은 금포(金袍)와 금서대(金犀帶)를 하사, 관료들은 일제히 전별시(詩)를 지어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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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까지 이어진 행차를 보고 도성사람들이 담장처럼 둘러서서
'이런 모습은 고금에 없는 성사'라고 했고,

퇴계는 "지금 사람들은 이러한 은퇴가 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김중청(金中淸)은 이 은퇴에 대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충재(沖齋)께서

전송대열에 서고, 모재(慕齎) 김안국(金安國), 퇴계(退溪)께서 시를 지어 전별했으니,
중국의 소광(소廣), 소수(소受)의 은퇴에 어찌 비교되겠는가,

이는 우리나라 수천 년 역사 이래 없었던 일로, 우리 농암선생이야말로

천백만 명 가운데 단 한 분 뿐이다"라고 찬양했다.
[실록]은 이를 '염퇴(염退)' 라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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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선생은 농부로 자임(自任)하고 일게 서생(書生)과 다름없이 물욕 없는

생활을 하여 '유선(유仙)'으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천성적인 시인으로, 분강의 강가를 두건을 비스듬히 쓰고 거닐면서
'강과 달과 배와 술과 시가 있는 낭만적 풍경'을 연출했다.
이 감흥과 미의식이 그대로 문학과 예술이 되었다.


이런 강호생활은 분강, 애일당을 예방한 동료, 후배들에 의해
'영남가단(嶺南歌壇)'이 형성되는 모태가 되었다.


특히 퇴계는 이미 강호의 그 진락(眞樂)을 얻었다" 라고 찬양했다.
관료적문학이 성행할 때, '강호지락(江湖之樂)'과 강호지미(江湖之美)'라는 큰 영향을 미쳐
'강호문학의 창도자'로 평가받았다.


'어부단가' 5장 가운데 그 2장' 은 이러하다.

 

굽어보니 千尋祿水,  도라보니 萬疊靑山
열 길 티끌 세상에 얼마나 가렸는가.
江湖에 月白하거든 더욱 無心하여라.

 

'어부가' 는 이후 퇴계의 '도산12곡' 에 영향을 주었고,
李漢鎭(이한진)의 '속어부사', 이형상의 '창보사' 등에 이어지고,
드디어 尹善道(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로 이어졌다.

 

윤선도는 '어부사시사' 의 서문에서
"어부사를 읊으면 갑자가 강에 바람이 일고 바다에는 비가 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표표하여 유세독립의 정서가 일어나게 했다.
이런 까닭으로 농암 선생께서 좋아 하셨으며 퇴계 선생께서도 탄상해마지 않으셨다"고 했다.


안동지역에서는 17세기 김응조, 18세기 권두경, 19세기 이휘영 등의 문집 기록에
"분강에서 농암의 '어부가' 를 다 함께 불렀다" 고 하여, 학술적 계승이 아닌
현장연출로서 수백년의 집단적 전승이 있었음을 밝혀놓았다.


그래서 국문학사에 송순 - 정철로 이어지는 '湖南歌壇(호남가단)'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다고 했다.

만년에 기로소에 입소되는 영예를 얻었으며, 명종으로부터
"경은 진실로 天下大老(천하대노)요. 當世元龜(당세원구)라,

염퇴이양이 이미 명철보신을 넘었으며 정관선기했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은퇴 후 거듭되는 상경 명령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지 않으니,
나라에서 1품인 승정대부의 품계를 내려 예우했다.
그래서 조선전기에 보기 드문 '在野政丞' 이 되었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이 직책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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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肯構堂(긍구당)]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2호

 

긍구당이란 [서경(書經)] 大誥篇(대고편)에 나오는 구절로, 조상의 업적을 길이길이

이어받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詩(시). 書(서). 畵(화)에 능하여 三絶(삼절)이라 불리는 신잠(申潛)이 현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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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永川李氏(영천이씨) 禮安派(예안파) 시조인 李軒(이헌)이 고려말에

도산면 분천동에 창건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별당으로 사용한 집이다.


조선 중기 농암선생이 중수하여 ‘긍구당’이라 이름붙인 후 宗宅(종택) 별당으로

사용되었고, 농암 종택의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
종택과 문중의 크고 작은 일이 이곳에서 결정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방은 모두 뒷면에 두었고, 앞면은 두리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달아

개방하여 운치가 있으며, 누마루 아래에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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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道門(유도문)]

 

이 문을 들어가면, 汾江書院(분강서원)과 운보선생의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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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汾江書院(분강서원)]

 

이 서원은 1613년(광해군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현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향현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후 1700년 (숙종26)에 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고종5)년에 훼철되었으며,

1967년 옛터 서쪽에 복원하고 영정을 봉안 석채례를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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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汾江書院(분강서원) 현판 글씨]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도곡재사를 옛터에 서원을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숭덕사, 8칸의 흥교당, 6칸의 극복재, 6칸의 경서재, 유도문,

12칸의 주소, 협문 등이 있다.

 
극복재와 경서재는 각각 동재와 서재로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곳이며,
정문인 유도문은 향사시 제관의 출입문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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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恕齎(경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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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復齊(극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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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사당(聾巖書堂)]


소재지 :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호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분강서원(汾江書院)의 사당이다.


순조(純祖) 27년(1827)에 건립되었으며 원래는 도산면 분천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5년에 도산면 운곡리로 옮겼다.


그 후 2005년 농암유적지 정비사업이 일환으로 현 위치로 다시 이건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신문(神門)과 사당로 구성되어 있으며 담장은 토석담장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우물마루로 바닥을 깔고 벽에는 농암의 영정을 모셨는데
경상도 관찰사 시절의 모습이라고 한다.
1800년대 건물이지만 고식이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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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2]

 

잠긴 사당안은 들어갈 수 없어서...

멀리서 담아본 사당 옆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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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신도비(聾巖 神道碑)]

 

소재지 : 안동시 예안면 신남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호


이 비는 조선 明宗(명종) 20년(1565) 2월에 세워진 농암 이현보의 신도비이다.
그는 麟蹄縣監(인제현감) 李欽(이흠)의 아들로 燕山君(연산군) 4년(1498)에 문과에

급제하여 慶尙道觀察使(경상도관찰사), 知中樞府事(지중추부사)등의 관직을 역임하였고

諡號(시호)는 孝節(효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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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비신의 높이는 1.9m이며 폭은 0.84m이다.
재질은 대리석으로 용모양의 비머리가 없이 귀부(龜부)위에 비신만 얹혀져 있고,
비신의 머리는 반원형으로 다듬어져 있는 규비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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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비문은 忍齋(인재) 洪暹(홍섬)이 지었으며 礪城尉(영성위) 宋寅(송인)이 썼다.
이 비 아래 紫雲齎舍(자운재사)가 있어서 농암의 묘소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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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를 바치고 있는 돌거북 머리]

 

89세에 沒(몰)하니 나라에서는 '孝'와 '절개'의 정신을 기려 '孝節(효절)'이란 시호를 내렸다.
조선 500년, '大老(대로)'라고 불려진 인물은 흔하기 않으며,
'효절'이란 시호 역시 선생이 유일하다.
선생은 전 생애에 걸쳐 명예를 포기하여 더 큰 명예를 얻은 삶을 몸소 보여주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고 있다.
청백리에 錄選(녹선)되었고, '분강서원'에 재향되었다.
문화관광부의 '2001년도 문화인물'로 선정 되어 국가적 차원의 추모행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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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에서 바라본 농암 종택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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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종택에서 바라본 汾江書院(분강서원)과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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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택 안체에서 바라본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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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담(月明潭)]

 

쏘두들에서 올미재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으며, 달이 밝게 비춰져서

월명담, 월명소, 월명당(月明塘)이라고도한다.


낙동강 절벽에 부딪혀서 깊은 소를 이루며, 옛부터 전해오기를 이곳 깊은 못에

용이 있기 때문에 가뭄이 심하면 고을 수령이 백성을 위해 용떡을 만들어 이곳 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는데 영험이 있었다고 하였다.


선정지(宣城誌)에는 예안의 아름다운 14곡 가운데 제4곡(第四曲)에 해당한다고 수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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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山亭(고산정)]

 

시도 유형문화재 274호(경북)

 

조선 중기의 학자로 퇴계 선생의 제자인 금난수(1530∼1599) 선생의 정자이다.


선생은 명종 19년(1564)에 이미 예안에서 ‘성재’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이어서 당시 선성(예안현)의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인 가송협에 고산정을 짓고

‘일동정자’라 하였다.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서 퇴계 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선비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던 곳으로

퇴계 선생의 시와 금난수 선생의 시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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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그려놓은 한폭의 동양화 고산정의 모습을 멀리서만 바라보고 들리진 못하였다.

들어가는 입구를 놓쳐서 되돌아가야겠기에 시간에 쫓겨 그냥 ....

다음을 기약해 보지만, 언제쯤 다시 들릴 수 있을지...

 

[사진. 글 / 초아(안내판과 인터넷 참조)]

2007년 5월 11일

 

[기여도 384 7.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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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령운동 1

 

1)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서  벌리고 서서 아령을 든 손을
    허벅지 앞에 모은다.
2) 손바닥은 서로 마주 보게 하며 팔꿈치는 약간 구부린다.

3) 아령을 든 양손을 동시에 어깨 높이로 들어올린다.
4) 처음자세로 돌아와서 반복한다.
5)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74 lines more... (total : 84 lines)" >효과적인 아령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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